‘종교개혁일’에 즈음하여
오는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일’입니다.
독일사람,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1517년 10월 31일에 로마 카톨릭을 향해 반기를 든 날입니다.
따라서, 전세계 개신교 교회는 10월 30일 주일에 ‘종교개혁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금년은 종교개혁 494년째 되는 해 입니다.
먼저, ‘종교개혁자’들을 열거해 보면, 독일에서는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1.10-1546.02.18) 와 그의 협력자, ’필립 멜랑크톤’(Philipp Melanchton 1497.02.16-1560.?)을 들수 있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혁을 단행했던 불란서 출신 ‘요한 칼빈’(John Calvin 1509.07.10-1531.10.11)을 비롯한 ‘훌드리히 즈빙글리’ (Huldrych Zwingli 1484.01.01-1531.10.11)를 들수 있으며,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개혁을 단행한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 대학 출신 ‘존 녹스’ (John Knox 1514.?-1572.11.24)를 들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 세상에 태어난 다음날인 1483.11.11 ‘아이스레벤’ (Eisleben)에 있는 성 페트리 파우리(St. Petri-Pauli)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개혁자, ‘마틴 루터’의 개혁운동 내용 일부를 전하고자 합니다.
중세기의 ‘카톨릭교회’는 끝없이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습니다.
성과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고 단단히 약속이나 한 듯 했습니다. 그것의 객관적인 증거는 당시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던 점이라고 말 할수 있겠습니다.
다시말해, 중세기 카톨릭의 언론은 획일화 되어 있었고, 그만큼, 언론 통제가 심하였던 것입니다.
여론은 무조건 무시 되었고, 참다운 여론의 형성이란 거의 불가능 하였기 때문입니다. 옳건, 그르건 교황의 지시 한 마디면 다 되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 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시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성 쌓기를 그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옛 속담에,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교황청을 ‘로마’에도 두고, 불란서 ‘아비뇽’에도 두게 되면서 교황이 둘도 되었다가 나중에는 셋도 되었다가 하면서 점차로 온 지면에 분열, 즉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물론 언어가 혼잡해지면서 옛날처럼 ‘일사불란’하게 통제되는 일도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독일인, ‘마틴 루터’의 손을 빌리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루터’의 전 인적 능력을 동원시켜 하나님은 ‘바벨탑’ 쌓는 자들을 모두 흩으심으로써 인간의 오만을 꺾고, 나아가서는 관련자들을 모두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첫째는, 탑을 쌓기 위해 지시, 감독하던 지배자들이요, 둘째는, 그 탑 쌓는 일에 동원되었던 노역자 민중들이었습니다.
전자에게는 깨달음과 뉘우침을 주고, 후자에게는 풀려나는 해방과 편히 쉼을 안겨 주었습니다.
특히 후대에 일종의 ‘안식년’(희년)을 제공해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루터’의 큰 공적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들에게 해방을 주는 ‘희년’은 하나님에 의해서 정하여졌지만, 인간에 의해서는 지켜지지 않았던, 이상적이기는 하나 비현실적인 제도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 때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법이 이제 신약시대의 중세에 들어 어느정도 실현을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루터’는 중세기의 거대한 세력이었던 카톨릭 교권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을 해방시켰습니다. 형식과 외식에 사로잡혀 있던 교회로부터 복음과 믿음을 빼앗아 일반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제’로서 특권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사제권’을 탈취하여 만인에게 부여 하였습니다. 이제, 중재자 없어도 하나님 앞에 직접 마주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들도, 직접 죄사함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과연, 이 새로운 해석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어떤지를 만인에게 알게 하기 위하여 ‘루터’는 라틴어로 되어 있는 성경을 자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여 (1534년)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껏, 자기들만의 전유물인양 감추고 있었던 성경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민중에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교황의 ‘성경해석 독점권’이 무너지고, ‘만인 성경해석권’이 수립된 것입니다. 성찬의 경우도, 성찬의 떡만 허락하고, 잔은 금함으로써 ‘사제’와 ‘평신도’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는 인식을 시키려고 애써오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루터’는 그 금지된 잔도 찾아다가 평신도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에게 내려오셔서 그들의 하는 일을 금지시키고, 관련자들을 흩으시며, 대신 민중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뜻을 ‘루터’가 당대에 과감하게 대행한 것. 바로 이것이 그의 위대함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거대한 탑에 도전하였던 용기 있는 ‘루터’의 모습은, 곧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에 도전하였던 용맹스런 목동, ‘다윗’의 모습을 방불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어려움에서 해방시켜 구원하였던 ‘다윗’처럼, ‘루터’도 신음중에 있던 백성들을 해방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목동의 신분을 벗어나 왕위에 오르자 그 선한 믿음의 사람 ‘다윗’왕은 자기의 충신, ‘우리아’장군을 죽이고, 그 가정을 판탄케 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마찬가지로, ‘루터’가 개혁의 안정을 찾았을때, 자신의 개혁운동을 지원해 주었던 민중이나 동역자, ‘필립 멜랑크톤’을 여지없이 저버리는 잘못을 범하였던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또 하나의 귀중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임종근 목사